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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자정을 넘겼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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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습니다, 목사님. 이미 예상하고 계셨겠지만 저는 지금 담임 목사님께 편지쓰기라는 제자반 숙제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저를 사랑하셔서 이 미천한 피조물이 당연히 해야 할, 하나님께 가까이 가려는 노력을 쪼~금이라도 하면 항상 저에게 큰 축복을 내려주시곤 했는데, ‘그럼 이번엔 그런 노력을 제대로 한 번 해서 대박의 축복을 받아 볼까’ 하는 단순무식한 마음가짐으로 시작한 제자훈련이 시작 4주만에 ‘엄청난 숙제라는 도전’을 주는군요. 1주일 동안 독후감 2개에 목사님께 편지쓰기, D형 QT에 설교노트 2개, 교재에 성경 읽기, 점점 눈덩이처럼 부풀어가는 구절암송이라니요. 저는 다락방도 김영만 집사님 다락방에 걸려서(?) 제자반 2개를 듣고 있는 셈인데, 하여간 이번 주는 거의 고3 시절의 추억(비애라고 해야 하나요?)을 떠올릴 정도군요. 그래도 대형교회만 다녔던 저에게는 담임 목사님이라는 존재가 아직도 좀 어려운가 봅니다. 한국에 있을 땐 잡지에 칼럼도 쓰고 했으니 글을 못 쓰는 편은 아닐 텐데, 이 숙제를 가장 먼저 하려고 저번 주부터 뭘 쓸까 하고 고민만 하고 있다가 제자반을 하루 남긴 화요일 자정이 다되어 가는 시간에 다른 숙제 다 끝내고도 아직도 목사님께 쓰는 편지를 잡고 씨름하고 있네요.

저는 보통 서울 집에서 일주일에 두세 번 전화를 받곤 합니다. 저번 주 수요일 밤 11시 즈음에 어머니께서 전화를 하시더니, ‘어이 아들, 아까 전화했더니 안 받더라’하셔서 제자반 갖다 왔다고 대답하니 ‘얼마나 하나 보자’하고 생각하셨는데 기특하셨던 모양입니다. 두 번째 전화는 금요일 밤 늦게 왔는데 ‘너 아까 전화했더니 안 받데… 금요일 저녁이니 둘이서 멋진 식사 하고 왔나 보구나?’ 하십니다. ‘아니오, 다락방 갔다 왔는데요.’하니 ‘이야~, 열심히들 하네’ 하고 흐뭇해 하십니다. 저번 주 마지막 통화는 주일날 했습니다. ‘그래 너희들 뭐하니? 요새 교회에도 열심히 나가는 것 같던데 주일예배 드리고 내일 회사가야 되니 쉬고 있겠구나?’… ‘제자반 숙제하고 있는데요…’. 이후 5초간의 정적, 그리고 이어진 어머니의 ‘으응, 참 열심이구나…’ 그리고 다시 5초… 나의 약간(?) 반항적이었던 사춘기 때 그렇~게 하시지 말라고 버릇 없이 소리를 질러대도 하루도 빠짐 없이 나를 위해 새벽 예배, 철야 예배 다니시던 그 모습으로 나를 다시 책상 앞으로 불러 앉히신 어머니, 잘 나가는 산부인과 의사면서도 휴가 때만 되면 세계 각지 오지로 의료선교 다니느라 해외여행의 개념이라는게 남들과는 다른 여동생, 그리고 앞의 두 명 보다는 못하지만 저에 비해선 훨~씬 신앙심이 뛰어나다고 자부하시던 아버지 등 한국의 가족들이 보기에 ‘문제아’였던 제가 열심히 신앙생활하는 모습은 기특한 정도를 넘어서 신기하게까지 보이는 모양입니다.

제가 이 교회에 처음 오게 되었던 게 작년 4-5월 경이니 이제 벌써 1년 반이 다 되었습니다. 제 교인번호가 314번이니 그래도 오래된(?) 교인 축에 끼지 않을까 싶습니다. 작년 LA에 와서 이리저리 교회 쇼핑(?)을 하다가 아내가 인터넷을 뒤지더니 ‘어 LA에도 사랑의 교회가 있네’라며 한 번 가보자고 하여 처음으로 이 교회에 발을 들여놓게 되던 때가 생각납니다. 지금까지 다녀왔던 안정된 큰 교회들과는 달랐던 코리아타운 한 구석 건물 2층의 십자가가 안 걸려 있으면 예배당일지도 모를 공간에서 드리던 예배, 솔직히 지금까지 주위에 있던 사람들과는 세상 사는 모습이 여러 가지로 달랐던 교인들… 하지만, 왠지 끌려서 열심히 예배에 참석하는 것으로 모자라서 집회니, 새벽예배니, 훈련이니, 또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 낮은 곳에서 섬겨보겠다는 겉멋에(?) 주방사역도 하게 되었지요. 주방팀 초기에 아직 우리 부부를 빼고는 팀원들이 거의 없을 때 지금은 정말 친해진(?), 정말 저하고는 이래저래 달랐던 나의순 집사님과 주방 옆 창고에 앉아서 옥신각신 했던 기억도 납니다.

‘내가 왜 그랬을까? 모태신앙으로 교회를 나가지 않으면 부모님께 혼나던 가정환경에서 자라났고, 그 좋다는 서울 사랑의 교회를 거의 초기서부터 다녔고, 항상 내 신앙의 나태함을 꾸짖던 믿음 좋은 아내와 함께 한 결혼생활도 이제 9년인데, 내가 왜 여기 이 교회에서 갑자기, 어떤 특별한 계기나 혹은 동기가 되는 격한 감동도 없이 왜 ‘그냥’ 그렇게 열심히 교회생활을 하게 된 걸까?’ 라는 생각을 해보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의문은 작년 초겨울 즈음에 바로 LA 사랑의 교회에서 처음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아 하나님은 내가 도대체 뭐라고 나에게 당신을 보여주시려고 나를 이리로 이끄셨구나.’라는 깨달음으로 해소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 나를 인도하셨던 수많았던 방법들을 생각하며 더 큰 감격에 빠지곤 합니다.

서울에서 사랑의 교회에 다닐 때 옥한흠 목사님이 늘상 교회는 설교들으러 오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곤 하셨지만, 사실 새로운 교인이 섬길 교회를 선택할 때 주일예배 시간의 반을 차지하는 담임 목사님의 설교, 그리고 그에게서 풍기는 신뢰도의 정도는 그 선택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소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있어서 목사님의 말씀 중심의, 세상의 논리에 타협하지 않고 말씀 그 자체를 이야기하시는 모습은 신선한 감동이었습니다. 뭐가 그리 애절하신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시며, 뭘 그리 교인들이 한 마디라도 놓칠까봐 불안하신지 손가락으로 강대상을 여러 번 꾸욱 누르시며 중요한 부분을 강조하시는 그 모습에서, 예배에 두 번째 나갔더니 사진을 보고 외우셨는지 ‘연성 형제’하며 손 내밀던 목사님의 모습에서, 교회에 약간의 소란이 있던 때 새일꾼반이 끝나고 가졌던 친목 모임에서 뭘 얼마나 혼자 고민하셨는지 얼굴이 반쪽이 된 걸 보고, 목사님의 존재하시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큰 믿음과 신실함, 그리고 믿음의 지도자로서 내가 의지할 수 있겠구나 하는 인간적인 신의를 느낍니다.

목사님은 매주 매번의 설교를 통해 하나님이 꼭 그 때 저에게 들려주고 싶어하시는, 그 전 한 주간 고민하고 있었던 부분에 관해서 저에 대한 일대일 맞춤형 설교를 하고 계신걸 아십니까? 저는 하나님이 저를 특별히 사랑하셔서, 저를 이런 저런 방법으로 이 도시로 이끄시고, 제 아내가 바로 그 시간에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이 교회 웹사이트를 갑자기 눈에 확 띄게 하여 저를 이 교회로 인도하시고, 제가 이 교회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축복을 내려주시고, 교회의 이런 저런 오묘한 모습들로 인하여 제가 생각하게 하시고 제 신앙이 성숙하게 하시고, ‘저를 위하여’ 목사님을 체스판 말 옮기듯이 제 앞 강대상 앞에 떡하고 옮겨놓고 목사님의 입을 통해 진리와 은혜의 말씀을 들려주신다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