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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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30분,
첫 잠에 정신을 잃고 있는데 어디에서 휘파람 소리가 요란했습니다.
몽롱한 모습으로 일어나니,
제 핸드폰 벨이 휘파람 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침 형 인간입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새 나라의 어른(?)이지요.
'누구야, 이 한 밤중에......' 속으로 중얼거리며
넘버를 보니 한국에서 온 전화였습니다.
단잠을 깨웠어 짜증이 속에서 들끓어 올라왔지만
누군지 모르니, 일단 왼손으로 그 짜증을 꾹~ 눌러놓고
오른손으로 전화를 받았습니다.
잠에서 깬 소리가 아니게, 짜증석인 소리가 아니게,
'음, 음,,,'기침을 하고, 최대한 우아한 목소리로 "여보세요~"하고 받았습니다.
"#$$%#@!#%^&*#$#%%&*@"
상대방의 말을 듣고 나니까 왼손으로 눌러 놓았던 짜증이 손가락 사이를 비집고 나오기 시작하드군요.
어느 큐티책에 두 달에 한 번 정도로 글을 내는 것이 있습니다.
교회탐방이라는 제목으로 인터뷰한 글이 나갑니다.
항상 마감일 일주일에서 늦어도 5일전에는 출판사로 보냅니다.
좀 일찍 보내야 혹시 출판사 쪽에서 어떤 수정의 요구가 있으면 정리해주려는 생각 때문에 말입니다.
이번에도 역시 그렇게 일찍 보냈지요.
그런데 인터뷰한 기사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사진이 몇 장 들어갑니다.
교회 중에는 작은 교회도 있고 큰 교회도 있는데, 홈페이지가 없는 작은 교회들은 기사를 다 마무리 한 다음에
목사님께 메일로 교회의 사진을 받아서 출판사로 넘기지요.
그러나 홈페이지가 있는 교회는 그 교회 홈페이지 주소만 알려주면 출판사에서 적당한 사진을 골라서 올리곤 합니다.
늘 그래 왔었기에 이번에도 마감 날 며칠 전에 보낸 글에 그 교회 홈페이지 주소를 함께 적어서 보냈습니다.
그런데 밤11시30분에 전화한 것이 출판사가 바빠서 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그 많은 사진들 중에
적당한 것을 고를 시간이 없으니 나보고 지금 빨리 홈페이지에 들어가
적당한 사진을 골라 이메일로 보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얼마나 화가 나든지......
그것도 지금 시간이 한국의 3시30분이니 오늘 중으로 마감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없다고 빨리 해서 보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며칠 전에 전화할 수 없었는지 정말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일찍 전화를 해서 그렇게 말을 했으면 조용히 준비해서 보냈을 것인데.
어떻게 두 시간 전에 전화해서 바쁘다는 말과 함께 그런 요구를......
더구나 이곳이 지금 11시 30분인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꾹꾹 눌러 두었던 화가 손가락을 비집고 튀어 오르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순간, 처음 “여보세요~~ ”할 때의 그 우아한 소리는 어디로 가고 없고,
듣기만 해도 입이 불퉁 나온 모양이 그려질 소리로
“아휴.... 이 시간에..... 왜 어제라도 전화하지 않고... 아니 오늘 낮에라도 전화를 하셨어야지... 어쨌든 알았습니다.”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책의 편집자이신 목사님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하라는 말씀만 하시고 더 이상의 설명은 없었습니다.
차마, 목사님께 전화를 통해서는 말 못하고 혼자서 중얼중얼, 짜증짜증, 불만불만 하면서 컴퓨터를 열었습니다.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생각하니,
몇 주 전, 새 생명반 공부시간에 ‘순종’에 대해서 배운 생각이 났습니다.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을 존경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존경할 수 없는 사람을 존경하는 것이 훌륭한 것이다.’
‘순종해야 할 일을 순종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순종할 수 없는 상황에서 순종해야 한다.
그것이 예수님이 가르치신, 예수님이 몸소 보여주신 순종이다.’라는 말씀이 문득 떠오르더군요.
순간 아찔했습니다.
얼른 표정을 바꾸어서 활짝 웃었습니다.
기쁘게 일했습니다.
딸에게 물어보았지요.
“엄마 얼굴에 웃음이 있지? 지금 내가 행복해 보이지?” 라구요.
딸이 그렇다고 하드군요. (참고로 딸은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납니다.^^)
배움을 실천한다는 것은 누가 보느냐, 보지 않느냐가 중요하지 않고,
혼자서부터 연습을 해야 다른 사람 앞에서도 잘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행복을 느꼈습니다.
시간이 좀 걸리기는 했지만, 고른 사진과 함께 웃음이 가득한 내용의 메일을 보냈습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행복하고 편안한 잠을 잘 수가 있었습니다.
주님과 같이 내 마음 만지는 분은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