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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내 고향은 경북, 영덕 바닷가. 앞으로는 동해바다가 수평선까지 넓게 펼쳐져 아침마다 일출의 아름다움을 맘껏 즐길 수 있다.
매년 정월 초하루에는 많은 사람들이 새해의 일출을 보기 위하여 멀리서 들 몰려오기 때문에 도로가 엄청 혼잡하여 주민들의 불편을 자아내기도 한다. 물론 그 틈에 장사로 한 몫을 챙기는 사람도 적지는 않지만. 그러한 바다가, 고요한 밤에는 집에 누워있으면서 파도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만큼 가까이에 있다.
그런가하면 뒤로는 ‘나비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서 온 마을을 감싸고 있는 포근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가끔은 영화촬영의 장소가 되기도 하고 사진작가들이 사진을 찍어가기도 한다. 영화 속에서나 달력의 사진 속에서 우리 마을은 우리가 느낄 수 없을 만큼 아름답게 나온다. 장소가 어디라고 기록하지 않으면 우리 마을임을 알아보지 못하고 ‘어디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을까?’하고 감탄 한다. 그렇게 아름다운 곳이 나의 고향이다.

어릴 때, 바다를 바라보고 살았지만, 바다에 몸을 담그고 수영을 해본 기억이 없다. 수영을 못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바다를 좋아한다. 바라보는 바다는 늘 나에게 신비로움이다.
바다가 아름답다. 햇살이 화창하게 내려 퍼부을 때는 반짝이는 바닷물이 보석인 듯하다. 비오는 바다를 보는 것은 수많은 실로폰의 연주처럼 튀어 오르는 물방울들이 소리로도, 그 모습으로도 황홀감을 건네준다. 보름달이 온 마을을 은색가루로 입힐 때, 바다에 떠오른 달은 가볍게 출렁이는 바다와 함께 춤을 추는 모습은 가히 예술 그 자체이다. 흑암이 가득한 밤에는 동네의 불빛들로 바다 표면을 수놓은 모습은 또한 어떠한가.

그럼에도 나는 바다보다는 산이 더 좋다. 산은 계절이 뚜렷해 정말 좋다. 여름과 가을이 다르고 겨울과 봄의 아름다움이 같지 않다. 그러한 산은 언제나 아름다움과 신선함을 나에게 안겨주었다.
온 산에 불이 난 듯 봄에 핀 진달래는 이슬에 방금 세수하고 나온 그 신선함이 따서 바로 먹어도 몸에 전혀 해가 없을 것 같다. 거기에다 산에서 흘러나오는 꽃향기는 온 마을을 뒤덮는다. 특히 아카시아 꽃이 필 때는 온 동네가 그 향기에 취해 비틀거린다. 바로 꿀 향기 그것이다. 나비와 벌이 유독 많아서 꿀을 따는 사람들이 봄에는 멀리서부터 원정까지 와서 산마다에 꿀통을 가져다 놓고 봄을 보낸다.
나는 늘 봄꽃을 보면 생각한다. 왜 봄꽃들은 잎을 마다하고 꽃부터 피울까. 잎이 나고, 꽃이 피고, 그리고 열매를 맺는 것이 자연스런 현상 같은데, 봄꽃만은 그 진리를 거슬러 언제나 꽃이 먼저 핀다. 하긴, 그래서 봄꽃이 더 사람들의 눈에 띄는 것이 아닐까.
여름의 푸르름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시원함을 안겨주기도 하고. 그 푸른 잎들이 내 품는 신선한 공기는 우리 마을 모든 사람의 건강까지 지켜준다.
가을의 오색찬란한 그 색깔은 신이 아니면 도저히 칠할 수 없는 황홀한 색이다. 어쩌면 내 고향의 단풍만큼 아름다운 단풍이 흔치 않은 것 같다. 노랑은 확실하게 노랗다. 그 어떤 색깔도 가미되지 않았다. 빨간색은, 시내 산에서 모세가 본, 불붙은 가시떨기 나무가 이런 색깔이 아니었을까? 눈부시게 빨갛다.
하얀 겨울은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함께 깨끗해진다. 나뭇가지가 휘어지도록 피어난 눈꽃은 금방이라도 꿀벌들이 날아들어 수정하여 얼음열매를 맺게 할 것 같다.

산은 이렇게 변화하고 순간순간 다른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서 우리로 하여금 즐겁고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그러한 산은 멀리서 보면 늘 아름다운데 가까이 다가가면 두 가지 모습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꽃향기에 취해 산에 들어가 아름답고 부드러운 꽃잎을 손으로 만지기도 하고 가까이에서 더 진하게 향기를 느끼며 기뻐하기도 한다. 예쁜 낙엽을 주워 책갈피에 꽂기도 하며 아름다운 산새의 노랫소리를 듣고 함께 노래하기도 하여 산 속에 들어옴을 기뻐하며 행복을 느낀다.
그런가하면 때로는 산에서 짐승의 오물을 발견하고, 그 아름답던 낙엽이 떨어져 썩어가는 모습에서 결코 깨끗하지 못함과 격한 냄새에 고개를 돌리게 만들기도 한다. 그뿐 아니라, 돌부리가 나의 발을 걸어서 넘어져 어려움을 당하게도 하고, 가시덤불이 나의 가는 길을 막아 힘들게도 한다. 때로는 가시가 찔러 피가 나기도 하며 깊은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산과 사람은 닮은 부분이 참 많다. 내가 믿었고, 변화무상한 세상에서 세파에 휩쓸리지 않고, 아름답고 바른 마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앞장 서 줄줄 알았던 그 사람의 이곳저곳에 허점이 나타나는 것이 보일 때는 내가 너무 깊이 들어 왔나보다고 생각한다.
다른 이들이 멀리서 나를 볼 때와 나의 속 깊이에 들어와서 느끼는 것이 다를 것이니 나 또한 불안하다. 내 속 어딘가에 있을 그 오물, 가시, 돌부리. 다른 이에게 들키지 않으려 누구도 너무 깊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 싶다.


*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완전한 줄로 생각하드군요.
그런데 어제 목사님께서 "나도 사람입니다. 내 가까이 오지마세요. 내 아내에게 물어보세요. 그저 멀리서 볼때가 좋습니다." 라고 말씀하실 때, 참 겸손하신 목사님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완전하게 만들지 않으신 것이 하나님을 더 많이 의지하라고 그러셨나보죠?
어제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며 이 글을 올리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