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미안해요”
페이지 정보
본문
“엄마, 미안해요”
끝내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잘 참아오다가, 목구멍을 넘어오는 말을 잘 눌러놓다가 한 순간 도가 넘으면 이렇게 밖으로 다 튀어나오고 만다. 바로 그 부분이 나의 약점이다.
아침에 등교하는 딸에게 “서둘러라.”소리는 자주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다. 11학년 들어 영 교시를(Zero Period) 신청하여 아침 7시에 수업이 시작된다. 그 시간 전에 도착해서 수업 들을 준비를 하고 있다가 선생님이 들어오시면 준비된 수업을 하기 원하는 나는 일반적인 엄마의 마음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우리 집 가까이 같은 학교에 다니는 딸의 친구가 살고 있다. 등교를 내가 시켜주고 하교를 그 집 부모가 시켜준다. 때로는 형편에 따라 바뀌기도 하지만. 그렇게 서로 도와서 나누어 등하교를 시킬 수 있는 형편이 서로에게 정말 좋다. 우리 집에서 늦어도 6시 40분에 나가야 딸의 친구를 태우고 학교에 가면 7시 전에 빠듯이 도착한다. 그런 연유로 하여 나는 가능한 시간을 맞추어 나가기를 원한다. 특히 딸의 친구는 조금만 늦어도 꼭, 늦었다고 잔소리를 한다. 수도 없이 그 말을 듣는다. “좀 일찍 와.” “너무 늦었어.” “일찍 가야돼.”등. 어떤 때는 짜증스럽게, 어느 날은 부드럽게. 난 그 말이 그렇게 듣기가 싫다. 딸을 재촉하고 또 재촉하여 나가서 신경이 쓰이는데, 그 아이의 한 마디가 다시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미안해.” 그 소리는 언제나 내가 해야 하는 말이 되고 말았다.
내 성격에도 문제가 있다면 있다. 도데체가 남에게 듣기 싫은 소리를 듣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모든 일에 항상 잘 하려고 하고, 실수 없이 하려고 한다. 누군가가 불편해 하면 내가 더 불편하다. 그러기에 어쩔 수 없을 때는 몰라도 가능하다면 모든 일을 빈틈없이 처리해 남에게 불편을 주지 않고, 해를 끼치지 않고 살아가기 원한다. 그런 내가 어쩌다 한 번도 아니고 자주 딸의 친구에게 그런 말을 해야 하는 것이 정말 싫다. 또 그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충분히 그럴 만 하다고 생각한다. 나라도 수업시간이 늦어지면 화가 날 것이고, 어쩌다 한 번도 아니고 계속 반복되는 일이면 당연히 싫을 것이다.
아침마다 딸에게 이야기 한다. “늦지 말자. 난 그 애의 그런 말도 듣기 싫고, 또 그 말도 사실이고.”라며 딸을 재촉한다. 그러나 딸은 이유 없이(내가 볼 때는 그렇다) 시간을 지체하고 꾸물거리다 늘 늦는다. 주로 좋은 말로 이야기한다. 가끔 조금 짜증이 섞인 말로 할 때도 없지는 않지만.
오늘 아침도 예외 없이 딸은 꾸물거렸고 나의 마음은 또 급해지기 시작했다. 그저께부터 시작된 학교의 중요한 테스트(CST)가 오늘까지 있다. 웬만하면 중요한 시험을 치러야 하는 아이에게 불편한 마음을 주기 원하지 않아 그냥 두려고 했다. 차에서 급한 마음으로 기다리는데 6시 51분임에도 여유롭게 집에서 나오는 딸을 보자 화가 치밀었다. 그 시간에는 딸의 친구 집에 도착했어도 늦을 시간이다. 최소한 5분 이상, 아니면 10분은 지각이다. 물론 딸의 말은 영 교시는 늦어도 선생님이 말하지 않고, 늦는 아이들이 많다지만 내 마음은 그게 아니다. 어쩔 수 없는 형편이면 몰라도 일찍 갈 수 있는 형편에 지각하는 것은 정말 싫다.
급기야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고 말았다. 오늘 시험을 치러야 하는 딸이 아침부터 스트레스를 잔득 받고 있는 모습을 아침먹을 때 보았음에도. 결국 시간이 넘어서 학교에 데려다주고 돌아와서 마음이 여러 가지로 불편했다. 늦은 것이나, 그렇다고 시험 칠 아이에게 소리 지른 것이나. 그러고 나면 항상 또 다시 마음이 불편하고 미안하다. 딸의 성격을 잘 아는 나는 마음 아파할 딸을 생각하면 그것 또한 마음에 걸린다.
집에 와서 녹차 한 잔을 놓고 책을 펴서 읽고 있는데 전화에서 ‘삐삐...’소리가 들렸다. 뭐지? 전화를 들어보니 딸이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엄마, 미안해요.”라고.
언제나 그렇다. 사실 딸이 잘한 것은 없지만, 나 역시 잘한 것은 아니다. 등교하는 아이에게, 큰 시험을 치르기 때문에 스트레스 받은 아이에게 소리 지르고 야단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딸이 먼저 사과하는 문자를 보냈다. 늘 그렇다. 이런 일이 있고 난 다음에는 언제나 딸이 나에게 전화를 하거나 문자를 보낸다. 미안하다고, 엄마 화내지 말라고.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언제나 딸이 먼저 사과하고 먼저 나에게 다가온다.
나도 친구들 중에 꽤나 사과를 잘 하는 편이다. 어쩌다 다툼이 있거나 뭔가 불편한 일이 있고 난 다음에는 항상 내가 사과한다. 처음에는 씩씩대며 화를 내지만, 돌아서서 생각하면 뭘 그걸 가지고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늘 들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할 수 있고, 실수할 수 있으니. 그리고 그것은 내 입장에서 생각하니 내가 잘한 것으로 보이지 상대방의 입장에서 보면 또 그 사람이 나에게 화가 났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대체로 내가 풀리고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먼저 사과하고 화해를 청한다.
그렇게 화해에 빠른 나지만 딸에게는 언제나 지고 만다. 조금의 시간도 주지 않고 딸은 나에게 사과한다. 오늘만 해도 불과 30분의 시간도 지나지 않아 딸은 사과의 문자를 보낸 것이다. 늘 그렇게 빠르다. 어떤 때는 생각해보면 분명히 나의 실수고, 나의 잘못이 더 많았음에도 딸은 자기가 잘못해서 엄마가 화가 났다고 미안하단다.
가슴이 아릿하다. 어린 것이 마음에 얼마나 상처를 입었을까. 11학년이라는 스트레스, 오늘 큰 시험 치러야 하는 스트레스. 엄마가 좀 편안히, 따뜻이 대해줄 수 없었을까. 딸에게 문자로 회신을 보냈다.
“괜찮아. 너는 괜찮니? 편안한 마음으로 시험 쳐라. 사랑해.”
끝내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잘 참아오다가, 목구멍을 넘어오는 말을 잘 눌러놓다가 한 순간 도가 넘으면 이렇게 밖으로 다 튀어나오고 만다. 바로 그 부분이 나의 약점이다.
아침에 등교하는 딸에게 “서둘러라.”소리는 자주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다. 11학년 들어 영 교시를(Zero Period) 신청하여 아침 7시에 수업이 시작된다. 그 시간 전에 도착해서 수업 들을 준비를 하고 있다가 선생님이 들어오시면 준비된 수업을 하기 원하는 나는 일반적인 엄마의 마음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우리 집 가까이 같은 학교에 다니는 딸의 친구가 살고 있다. 등교를 내가 시켜주고 하교를 그 집 부모가 시켜준다. 때로는 형편에 따라 바뀌기도 하지만. 그렇게 서로 도와서 나누어 등하교를 시킬 수 있는 형편이 서로에게 정말 좋다. 우리 집에서 늦어도 6시 40분에 나가야 딸의 친구를 태우고 학교에 가면 7시 전에 빠듯이 도착한다. 그런 연유로 하여 나는 가능한 시간을 맞추어 나가기를 원한다. 특히 딸의 친구는 조금만 늦어도 꼭, 늦었다고 잔소리를 한다. 수도 없이 그 말을 듣는다. “좀 일찍 와.” “너무 늦었어.” “일찍 가야돼.”등. 어떤 때는 짜증스럽게, 어느 날은 부드럽게. 난 그 말이 그렇게 듣기가 싫다. 딸을 재촉하고 또 재촉하여 나가서 신경이 쓰이는데, 그 아이의 한 마디가 다시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미안해.” 그 소리는 언제나 내가 해야 하는 말이 되고 말았다.
내 성격에도 문제가 있다면 있다. 도데체가 남에게 듣기 싫은 소리를 듣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모든 일에 항상 잘 하려고 하고, 실수 없이 하려고 한다. 누군가가 불편해 하면 내가 더 불편하다. 그러기에 어쩔 수 없을 때는 몰라도 가능하다면 모든 일을 빈틈없이 처리해 남에게 불편을 주지 않고, 해를 끼치지 않고 살아가기 원한다. 그런 내가 어쩌다 한 번도 아니고 자주 딸의 친구에게 그런 말을 해야 하는 것이 정말 싫다. 또 그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충분히 그럴 만 하다고 생각한다. 나라도 수업시간이 늦어지면 화가 날 것이고, 어쩌다 한 번도 아니고 계속 반복되는 일이면 당연히 싫을 것이다.
아침마다 딸에게 이야기 한다. “늦지 말자. 난 그 애의 그런 말도 듣기 싫고, 또 그 말도 사실이고.”라며 딸을 재촉한다. 그러나 딸은 이유 없이(내가 볼 때는 그렇다) 시간을 지체하고 꾸물거리다 늘 늦는다. 주로 좋은 말로 이야기한다. 가끔 조금 짜증이 섞인 말로 할 때도 없지는 않지만.
오늘 아침도 예외 없이 딸은 꾸물거렸고 나의 마음은 또 급해지기 시작했다. 그저께부터 시작된 학교의 중요한 테스트(CST)가 오늘까지 있다. 웬만하면 중요한 시험을 치러야 하는 아이에게 불편한 마음을 주기 원하지 않아 그냥 두려고 했다. 차에서 급한 마음으로 기다리는데 6시 51분임에도 여유롭게 집에서 나오는 딸을 보자 화가 치밀었다. 그 시간에는 딸의 친구 집에 도착했어도 늦을 시간이다. 최소한 5분 이상, 아니면 10분은 지각이다. 물론 딸의 말은 영 교시는 늦어도 선생님이 말하지 않고, 늦는 아이들이 많다지만 내 마음은 그게 아니다. 어쩔 수 없는 형편이면 몰라도 일찍 갈 수 있는 형편에 지각하는 것은 정말 싫다.
급기야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고 말았다. 오늘 시험을 치러야 하는 딸이 아침부터 스트레스를 잔득 받고 있는 모습을 아침먹을 때 보았음에도. 결국 시간이 넘어서 학교에 데려다주고 돌아와서 마음이 여러 가지로 불편했다. 늦은 것이나, 그렇다고 시험 칠 아이에게 소리 지른 것이나. 그러고 나면 항상 또 다시 마음이 불편하고 미안하다. 딸의 성격을 잘 아는 나는 마음 아파할 딸을 생각하면 그것 또한 마음에 걸린다.
집에 와서 녹차 한 잔을 놓고 책을 펴서 읽고 있는데 전화에서 ‘삐삐...’소리가 들렸다. 뭐지? 전화를 들어보니 딸이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엄마, 미안해요.”라고.
언제나 그렇다. 사실 딸이 잘한 것은 없지만, 나 역시 잘한 것은 아니다. 등교하는 아이에게, 큰 시험을 치르기 때문에 스트레스 받은 아이에게 소리 지르고 야단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딸이 먼저 사과하는 문자를 보냈다. 늘 그렇다. 이런 일이 있고 난 다음에는 언제나 딸이 나에게 전화를 하거나 문자를 보낸다. 미안하다고, 엄마 화내지 말라고.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언제나 딸이 먼저 사과하고 먼저 나에게 다가온다.
나도 친구들 중에 꽤나 사과를 잘 하는 편이다. 어쩌다 다툼이 있거나 뭔가 불편한 일이 있고 난 다음에는 항상 내가 사과한다. 처음에는 씩씩대며 화를 내지만, 돌아서서 생각하면 뭘 그걸 가지고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늘 들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할 수 있고, 실수할 수 있으니. 그리고 그것은 내 입장에서 생각하니 내가 잘한 것으로 보이지 상대방의 입장에서 보면 또 그 사람이 나에게 화가 났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대체로 내가 풀리고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먼저 사과하고 화해를 청한다.
그렇게 화해에 빠른 나지만 딸에게는 언제나 지고 만다. 조금의 시간도 주지 않고 딸은 나에게 사과한다. 오늘만 해도 불과 30분의 시간도 지나지 않아 딸은 사과의 문자를 보낸 것이다. 늘 그렇게 빠르다. 어떤 때는 생각해보면 분명히 나의 실수고, 나의 잘못이 더 많았음에도 딸은 자기가 잘못해서 엄마가 화가 났다고 미안하단다.
가슴이 아릿하다. 어린 것이 마음에 얼마나 상처를 입었을까. 11학년이라는 스트레스, 오늘 큰 시험 치러야 하는 스트레스. 엄마가 좀 편안히, 따뜻이 대해줄 수 없었을까. 딸에게 문자로 회신을 보냈다.
“괜찮아. 너는 괜찮니? 편안한 마음으로 시험 쳐라.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