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99도에서 끓지 않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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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수증기가 되기 위해서는 섭씨 100도가 되어야 한다. 100도가 되기 전까지는 물은 수증기가 되지 않는다.
0도의 물이건 99도의 물이건 끓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 차이가 자그마치 99도나 되는데도 마찬가지이다. 물은 99도까지는 끓지 않다가 100도가 되면 끓기 시작하여 액체에서 기체라는 신분의 변화를 가져온다. 99도와 100도는 1도 차이이다. 아주 작은 차이이지만 굉장한 차이를 가져온다. 99도까지는 끓지 않던 물이 1도만 올렸는데도 끓기 시작하는 것이다. 99도가 되기까지는 온도를 상당한 숫자로 올려도 물이 끓지 않는다. 그러나 99도에서는 1도만 올리면 된다.
우리의 삶은 어떤가? 1만 참으면 좋은 결과를 볼 수 있는데 그 1을 참지 못해서 낭패를 보고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99까지 이르기 위해서 그 많은 세월을 보내왔고, 애타 왔고, 땀을 흘려왔고, 밤을 지새워 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마지막 1을 기다리지 못해서 좋은 결과를 영원히 얻지 못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99까지 기다렸는데 1을 더 기다린다고 무슨 뾰족한 수가 생길 일이 없다고 단정해 버릴 수 있을까?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는 5도나 10도 아니면 90도를 올려도 별다른 차이점을 느끼지 못하다가 어느 지점에서는 오직 1도만 올려도 훨훨 나는 인생이 될 수 있다. 지금이 바로 우리에게 99도의 지점에 올라왔는지도 모른다. 99까지 올려놓고 마지막 1을 올리지 않고 주저앉는다는 것은 최선을 다하지 못한 소치이다. 우리가 99까지 이루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최선을 다 한 일이 아니다. 최선은 바로 1을 더 해서 100을 만들어 내는 일이다.
옛 날 어떤 동네에 우물파는 전문가가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몇 번이고 실패해야 겨우 우물 하나를 팔뿐이었으나 그 사람은 땅을 팔 때마다 우물을 만들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 사람에게 그 비결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100발 100중으로 우물을 파는 것이 성공하는 특별한 비결이 있는가 하고. 그 사람의 대답은 간결했다. "간단하지요. 저는 한 번 우물을 파면 물이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파내려갑니다. 그러니 파는 곳마다 우물을 만들었지요."
대나무 씨를 뿌리고 4년 동안은 싹도 나지 않는다. 그러나 5년째가 되면 당년에 25미터까지 자란다. 4년을 허비한 것이 아니다. 땅밑에 뿌리가 크게 자란 것이다.
인내하면서 최선을 다 하는 자에게만 좋은 기회가 온다. 제 2차 세계대전,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유대인들은 이런 노래를 부르며 그들의 신심을 강화시켰다. "우리는 구세주가 오리라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조금 늦게 오십니다." 그들 중에 젊고 유능한 외과의사가 있었다. 그는 매일 가스실과 실험실을 향하여 떠나는 동족들의 죽음의 행렬을 보았다. 자신도 머지않아 가스실의 제물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노동시간에 이 젊은 외과의사는 흙 속에 파묻힌 푸른 유리 조각을 몰래 숨겨 가지고 돌아와 날카로운 파편으로 면도를 하기 시작하였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아침과 저녁이면 깨진 유리병의 파편으로 면도를 했다. 나치스들은 면도질을 해 항상 깔끔한 그 청년을 죽이는게 너무 아까워 매일 매일 죽음을 미루었다. 그는 결국 나치 패망까지 살아남았다. 그가 죽음의 수용소를 떠날 때 그의 소지품은 단 한가지, 깨진 푸른 유리조각이었다. 스웨덴에서 개업을 하고 성공한 그 외과의사는 유월절이 오면, 그는 이런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신의 도움은 결코 늦는 법이 없다네. 다만 우리가 너무 성급할 뿐이네."
0도의 물이건 99도의 물이건 끓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 차이가 자그마치 99도나 되는데도 마찬가지이다. 물은 99도까지는 끓지 않다가 100도가 되면 끓기 시작하여 액체에서 기체라는 신분의 변화를 가져온다. 99도와 100도는 1도 차이이다. 아주 작은 차이이지만 굉장한 차이를 가져온다. 99도까지는 끓지 않던 물이 1도만 올렸는데도 끓기 시작하는 것이다. 99도가 되기까지는 온도를 상당한 숫자로 올려도 물이 끓지 않는다. 그러나 99도에서는 1도만 올리면 된다.
우리의 삶은 어떤가? 1만 참으면 좋은 결과를 볼 수 있는데 그 1을 참지 못해서 낭패를 보고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99까지 이르기 위해서 그 많은 세월을 보내왔고, 애타 왔고, 땀을 흘려왔고, 밤을 지새워 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마지막 1을 기다리지 못해서 좋은 결과를 영원히 얻지 못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99까지 기다렸는데 1을 더 기다린다고 무슨 뾰족한 수가 생길 일이 없다고 단정해 버릴 수 있을까?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는 5도나 10도 아니면 90도를 올려도 별다른 차이점을 느끼지 못하다가 어느 지점에서는 오직 1도만 올려도 훨훨 나는 인생이 될 수 있다. 지금이 바로 우리에게 99도의 지점에 올라왔는지도 모른다. 99까지 올려놓고 마지막 1을 올리지 않고 주저앉는다는 것은 최선을 다하지 못한 소치이다. 우리가 99까지 이루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최선을 다 한 일이 아니다. 최선은 바로 1을 더 해서 100을 만들어 내는 일이다.
옛 날 어떤 동네에 우물파는 전문가가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몇 번이고 실패해야 겨우 우물 하나를 팔뿐이었으나 그 사람은 땅을 팔 때마다 우물을 만들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 사람에게 그 비결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100발 100중으로 우물을 파는 것이 성공하는 특별한 비결이 있는가 하고. 그 사람의 대답은 간결했다. "간단하지요. 저는 한 번 우물을 파면 물이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파내려갑니다. 그러니 파는 곳마다 우물을 만들었지요."
대나무 씨를 뿌리고 4년 동안은 싹도 나지 않는다. 그러나 5년째가 되면 당년에 25미터까지 자란다. 4년을 허비한 것이 아니다. 땅밑에 뿌리가 크게 자란 것이다.
인내하면서 최선을 다 하는 자에게만 좋은 기회가 온다. 제 2차 세계대전,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유대인들은 이런 노래를 부르며 그들의 신심을 강화시켰다. "우리는 구세주가 오리라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조금 늦게 오십니다." 그들 중에 젊고 유능한 외과의사가 있었다. 그는 매일 가스실과 실험실을 향하여 떠나는 동족들의 죽음의 행렬을 보았다. 자신도 머지않아 가스실의 제물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노동시간에 이 젊은 외과의사는 흙 속에 파묻힌 푸른 유리 조각을 몰래 숨겨 가지고 돌아와 날카로운 파편으로 면도를 하기 시작하였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아침과 저녁이면 깨진 유리병의 파편으로 면도를 했다. 나치스들은 면도질을 해 항상 깔끔한 그 청년을 죽이는게 너무 아까워 매일 매일 죽음을 미루었다. 그는 결국 나치 패망까지 살아남았다. 그가 죽음의 수용소를 떠날 때 그의 소지품은 단 한가지, 깨진 푸른 유리조각이었다. 스웨덴에서 개업을 하고 성공한 그 외과의사는 유월절이 오면, 그는 이런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신의 도움은 결코 늦는 법이 없다네. 다만 우리가 너무 성급할 뿐이네."